1388년 명의 요동을 공략하기 위해 압록강 하류에 있는 위화도에 진을 치고 있던 이성계 일당은 말머리를 돌려 개경을 공격했습니다. 바로 위화도 회군입니다. 개경을 함락한 이성계는 요동정벌을 명령한 최영을 내 몰고 우왕을 폐위시켜 정권을 장악합니다. 이는 고려 멸망의 시작입니다.
위화도 회군의 명분
고려가 요동을 공격하기로 한 것은 명이 무리한 공물을 요구하고 철령 이북의 고려 땅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려를 속국으로 삼으려는 명의 속셈이기에 고려는 크게 반발하였고, 최영을 중심으로 명의 전초기지인 요동을 정벌하기로 한 것입니다.
우왕은 8도에서 군사를 징집하고 최영과 함께 서해도로 가서 요동 정벌을 준비하게 됩니다. 1388년 4월 최영을 팔도도통사로 삼고 우군도통사에 이성계를 임명한 후 요동 정벌에 나섰습니다.
5월에 위화도에 도달한 이성계의 5만 대군은 장마가 시작되어 압록강 물이 엄청나게 불어났기 때문에 요동성을 공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성계는 우왕에게 요동정벌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리게 됩니다.
사불가론(四不可論)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다
둘째,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부적당하다
셋째, 요동을 공격하는 틈을 타서 남쪽에서 왜구가 침범할 우려가 있다
넷째,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로 쓸 수 없고 병사들도 전염병에 걸릴 염려가 있다
그러나 우왕과 최영 등 정벌 파는 이성계의 주장을 무시하고 요동정벌을 독촉하게 됩니다. 이에 이성계는 좌군도통사 조민수와 합을 맞춰 개경을 향해 회군을 단행하게 됩니다.
개경에 진격한 이성계 일당은 최영 군대와 전쟁 끝에 승리를 하게 됩니다. 최영을 고봉현으로 유배시키고 우왕을 폐위하여 강화도로 보냅니다. 그리고 조민수의 주장에 따라 창왕을 옹립합니다.
고려왕조의 최후
우왕을 폐하고 최영을 제거한 이성계와 조민수는 조정을 장악한 뒤 각각 우시중과 좌시중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때부터 명의 연호인 홍무를 사용하고 의복도 원의 호복을 금하고 명의 것을 입도록 명하였습니다.
왕위 계승을 놓고 갈등
조민후와 이성계는 차기 왕을 옹립하는 문제에서 이견을 보입니다. 조민수가 우왕의 아들 창을 내세우는 반면, 이성계는 왕 씨 일족 중에서 왕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성계의 명분은 우왕과 창이 신돈의 자손이고 왕 씨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견이 있는 와중에 조민수는 목은 이색의 조언에 따라 공민왕의 정비 안 씨에게 국새를 맡겼고, 안 씨는 우왕의 아들 창을 왕위에 오르게 합니다. 1388년 6월 겨우 아홉 살의 나이에 창왕은 왕위에 오릅니다.
1389년 11월 이성계는 정몽주 등과 함께 이른바 폐가입진(廢假立眞), 즉 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는 이유로 신 씨인 창왕을 폐위시키고 제20대 왕인 신종의 7 세손 정창군 요창을 왕위에 올리는데 그가 바로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입니다.
왕에 등극하는 이성계
마지막 정적이던 조민수가 실각하자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져 3년 뒤인 1392년 7월 이성계는 조준, 정도전, 남은, 이방원 등의 추대에 힘입어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공양왕은 공양군으로 강등되어 원주로 유배를 떠납니다. 이로써 고려 왕실은 34 왕 474년으로 막을 내렸으며, 마지막 고려의 왕은 원주, 간성, 삼척 등을 떠돌다가 11년 후인 1403년 이성계의 명에 의해 처형되어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왕 씨 일가를 멸족케 하려한 이성계
야사에 의하면 이성계 일파는 왕씨 일가를 멸족하기 위해 전국에 방을 붙여 왕 씨들을 한 곳에 모아 수장시킨 것으로 전해집니다. 왕 씨들에게 예후 차원에서 섬을 하나 하사한다고 하여 강화 해안에 모두 모이게 하고, 강화도행 배를 타게 한 후 모두 수장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때 이성계 일파의 모략을 눈치챈 일부 왕 씨들은 배에 오르지 않고 산속으로 도망가 살게 됩니다. 이때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성씨를 전(全)씨, 옥(玉)씨, 전(田)씨, 용(龍)씨 등으로 속여 살아남습니다.
또한 태조실록에 따르면 왕 씨의 후손들은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못하게 하고 어머니 성을 따르도록 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이성계가 정책적으로 남은 왕 씨를 멸족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내 친구 전 모 씨도 고려 왕족의 후손입니다. 어쩐지 성품이 고결하다 했습니다.
2023.12.16 - [시사] - 인조시대의 변란 이괄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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